Non CP
고남순은 사실 어릴 적에 딱 한 번 친척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잘 사는 집은 아니었고 방이 두개에 좁은 거실, 그리고 낡은 화장실과 바깥에 안 쓰는 창고가 있었다. 어머니 쪽 친적이었던 박 씨 삼촌은 남순을 이따금 창고에 가뒀는데 대개 술에 취해 사리분별을 못하게 되면 그런 행동을 했다. 일찍이 사별한 아내와 어린 나이에 죽은 제 동생에 대한 일이 그리도 슬펐던 것인지 무엇인지 박 씨 삼촌은 남순을 가두기도 했고 패기도 했다. 하얗고 반반한 얼굴은 그 시절엔 온전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머리는 항상 산발이었고 옷 소매나 카라깃에는 피가 눌어붙어 있기도 했다. 박 씨 삼촌의 폭력은 그에게 새 아내가 생기고 부터 멎었는데 새 아내는 고남순을 지지리도 싫어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사실 생판 남의 자식을 거둬 키우는 것에 대한 분노일지도 몰랐다.
한 사람의 폭력에서 두 사람의 폭력으로 변했을 때 남순은 구석에서 홀로 울었다. 괴로워서 울었고 엄마가 보고싶어 울었다. 이 집에 저를 맡긴 아버지같은 사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가 나를 이런 곳에 맡기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생각하니 제 자신이 초라하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학에 가까운 생각을 들고 어두운 거실을 지나칠 즈음, 방음이 안되는 방문너머로 들렸다. '기분이 나빠서 참을 수가 없어. 도대체 언제까지 저런 애를 맡아 키울 셈이야?!' '하는 수 없잖아. 동생의 부탁이었고, 나도 동생만 안 닮았으면 저런 기분 나쁜 애 옛날에 갖다 버렸다고.' 박 씨 삼촌의 목소리는 멀쩡했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깊은 자괴감이 찾아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야. 나는 삼촌과는 친하지도 않았고, 이 집의 가족이 아니니까. 나를 싫어하는 것도 당연해. 어렸던 남순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악의와 분노, 혹은 연민과 애증. 남순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까. 혹시 엄마도 나를 싫어하진 않았을까. 아빠는…아빠는 나를…….
큰 사고였다. 박 씨 삼촌이 휘두른 술병에 머리를 맞았던 걸로 기억했다. 원래도 깨져있던 유리병이라 맞는 순간에 병은 박살이 나버렸고 날카로운 몇 조각들이 관자놀이를 할퀴고 떨어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고 구토감이 밀려오며 욱씬거렸고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집에 들어오는 박 씨 삼촌의 아내인 B를 보며 남순은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주르륵 흐르는 피를 닦아볼 생각도 못하고 짧은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을 가는 두 남녀를 보며 남순은 서러움이 터져버리기라도 한 듯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무슨 정신이었을까. 남순은 그 당시 주머니에 항상 메모를 쥐고 다녔는데 그의 아버지인 고명석의 전화번호였다. 기어가듯 몸을 질질 끈 남순은 팽개쳐지듯 떨어져있는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희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습게 명석은 전화를 받았다. 고단함에 찌든 목소리는 아빠, 아빠아, 남순이 죽을 거 같아─ 흐느낌에 가까운 말을 듣고는 끊어졌다. 엉엉 울다 그대로 쓰러졌던 것도 같다.
눈을 떴을 땐 병원도 무엇도 아니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을 때 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달랑 이불 몇 채와 커다란 가방 두어개, 박스가 세네개. 장판은 따듯했고 남순은 다시 눈을 감았다. 삼촌과 그 아줌마만 없다면 다 괜찮아. 어렴풋한 새벽, 철컹대며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남순은 누군가 옆에 누워주는 것을 느꼈으나 이미 지쳤던 탓인지 눈을 뜰수는 없었다. 그러나 살풋 나는 오일냄새와 쇠냄새가 명석임을 희미하게나마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 명석은 남순을 박 씨 삼촌네서 빼왔다. 아이는 제가 데리고 갈테니 여태 감사했다는 말을 남기고 흰 봉투를 상위에 던지들 올려둔 뒤 집을 빠져나갔다. 명석의 허벅지께도 오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남순은 그 커다란 손을 잡고 이따금 명석을 올려다봤다. 무미건조한 표정과 큰 키, 조금은 낡고 회사의 이름이 쓰여진 직업점퍼를 입은 사람이었다. 남순의 기억 속에 명석은 그랬다. 그러나 손을 잡아주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제법 따듯했던 것도 같았다.
저녁이 넘어서야 도착한 곳은 명석이 일하던 곳의 컨테이너였고 그는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다리 뒤에 숨어 낯선이들을 보던 남순은 돌연 안겨졌다. 명석은 남순을 품에 안고 눈 앞의 남자에게 부탁했다. 어렸지만 남순은 그의 부탁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 뿐인 내 아들이요. 마누라 일찍 죽고 이번에 내가 이리로 일을 오게 되서 친척집에 맡겨놨는데, 그게 사정이 생겨서…, 사고는 안 치도록 잘 말해둘 테니 이곳에서 같이 살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인상이 험악하던 남자는 생긴 것만큼 나쁘지 않았는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후로 거의 2년 가까이 남순은 컨테이너에서 명석과 살았다.
이따금 명석은 저녁이 되어 남순이 잠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했다. 남순이, 고남순이. 아마 그의 무미건조한 성격탓에 제대로 표현은 되지 않았을 것 같았지만 예상컨대 명석은 남순을 나름 아껴서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로 남순의 이름 석 자를 불렀을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해."
"뭐가."
"그 때 경찰도 아니고 구급대원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아부지 전화번호였는지."
"멍청해서 몰랐던 거 아니냐."
멍청해서, 어쩌면 그냥 알았던 걸지도 모르지.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확실하게 안다고 하니까. 언제나 무뚝뚝하고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애매한 그가 희미하게 옅게 보내는 것이 제 자식에 대한 사랑임을 말이야.
그냥 그런 생각입니다. 남순이네 아부지는 사실 남순이를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일단은 제 자식이었고 뭣보다 생활비도 보내주고 있었고. 막말로 싫었다면 자식새끼 어떻게되든 알 게 뭐냐 라는 식으로 생활비 따위도 보내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적이긴 하지만 남순이 아부지가 남순이를 생각해주는 모습을 써보고 싶어서 이야기가 극단적이 되어버렸네요. 논커플링은 처음 써봅니다. 나름 좋네요. 뭐랄까 부자간의 무언가가 보고싶었던 모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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