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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순의 유년기

/ 2016. 3. 20. 14:21

Non CP







 고남순은 사실 어릴 적에 딱 한 번 친척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잘 사는 집은 아니었고 방이 두개에 좁은 거실, 그리고 낡은 화장실과 바깥에 안 쓰는 창고가 있었다. 어머니 쪽 친적이었던 박 씨 삼촌은 남순을 이따금 창고에 가뒀는데 대개 술에 취해 사리분별을 못하게 되면 그런 행동을 했다. 일찍이 사별한 아내와 어린 나이에 죽은 제 동생에 대한 일이 그리도 슬펐던 것인지 무엇인지 박 씨 삼촌은 남순을 가두기도 했고 패기도 했다. 하얗고 반반한 얼굴은 그 시절엔 온전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머리는 항상 산발이었고 옷 소매나 카라깃에는 피가 눌어붙어 있기도 했다. 박 씨 삼촌의 폭력은 그에게 새 아내가 생기고 부터 멎었는데 새 아내는 고남순을 지지리도 싫어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사실 생판 남의 자식을 거둬 키우는 것에 대한 분노일지도 몰랐다.


 한 사람의 폭력에서 두 사람의 폭력으로 변했을 때 남순은 구석에서 홀로 울었다. 괴로워서 울었고 엄마가 보고싶어 울었다. 이 집에 저를 맡긴 아버지같은 사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가 나를 이런 곳에 맡기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생각하니 제 자신이 초라하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학에 가까운 생각을 들고 어두운 거실을 지나칠 즈음, 방음이 안되는 방문너머로 들렸다. '기분이 나빠서 참을 수가 없어. 도대체 언제까지 저런 애를 맡아 키울 셈이야?!' '하는 수 없잖아. 동생의 부탁이었고, 나도 동생만 안 닮았으면 저런 기분 나쁜 애 옛날에 갖다 버렸다고.' 박 씨 삼촌의 목소리는 멀쩡했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깊은 자괴감이 찾아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야. 나는 삼촌과는 친하지도 않았고, 이 집의 가족이 아니니까. 나를 싫어하는 것도 당연해. 어렸던 남순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악의와 분노, 혹은 연민과 애증. 남순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까. 혹시 엄마도 나를 싫어하진 않았을까. 아빠는…아빠는 나를….






 큰 사고였다. 박 씨 삼촌이 휘두른 술병에 머리를 맞았던 걸로 기억했다. 원래도 깨져있던 유리병이라 맞는 순간에 병은 박살이 나버렸고 날카로운 몇 조각들이 관자놀이를 할퀴고 떨어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고 구토감이 밀려오며 욱씬거렸고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집에 들어오는 박 씨 삼촌의 아내인 B를 보며 남순은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주르륵 흐르는 피를 닦아볼 생각도 못하고 짧은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을 가는 두 남녀를 보며 남순은 서러움이 터져버리기라도 한 듯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무슨 정신이었을까. 남순은 그 당시 주머니에 항상 메모를 쥐고 다녔는데 그의 아버지인 고명석의 전화번호였다. 기어가듯 몸을 질질 끈 남순은 팽개쳐지듯 떨어져있는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희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습게 명석은 전화를 받았다. 고단함에 찌든 목소리는 아빠, 아빠아, 남순이 죽을 거 같아─ 흐느낌에 가까운 말을 듣고는 끊어졌다. 엉엉 울다 그대로 쓰러졌던 것도 같다.


 눈을 떴을 땐 병원도 무엇도 아니었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을 때 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달랑 이불 몇 채와 커다란 가방 두어개, 박스가 세네개. 장판은 따듯했고 남순은 다시 눈을 감았다. 삼촌과 그 아줌마만 없다면 다 괜찮아. 어렴풋한 새벽, 철컹대며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남순은 누군가 옆에 누워주는 것을 느꼈으나 이미 지쳤던 탓인지 눈을 뜰수는 없었다. 그러나 살풋 나는 오일냄새와 쇠냄새가 명석임을 희미하게나마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 명석은 남순을 박 씨 삼촌네서 빼왔다. 아이는 제가 데리고 갈테니 여태 감사했다는 말을 남기고 흰 봉투를 상위에 던지들 올려둔 뒤 집을 빠져나갔다. 명석의 허벅지께도 오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남순은 그 커다란 손을 잡고 이따금 명석을 올려다봤다. 무미건조한 표정과 큰 키, 조금은 낡고 회사의 이름이 쓰여진 직업점퍼를 입은 사람이었다. 남순의 기억 속에 명석은 그랬다. 그러나 손을 잡아주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제법 따듯했던 것도 같았다.


 저녁이 넘어서야 도착한 곳은 명석이 일하던 곳의 컨테이너였고 그는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다리 뒤에 숨어 낯선이들을 보던 남순은 돌연 안겨졌다. 명석은 남순을 품에 안고 눈 앞의 남자에게 부탁했다. 어렸지만 남순은 그의 부탁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하나 뿐인 내 아들이요. 마누라 일찍 죽고 이번에 내가 이리로 일을 오게 되서 친척집에 맡겨놨는데, 그게 사정이 생겨서…, 사고는 안 치도록 잘 말해둘 테니 이곳에서 같이 살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인상이 험악하던 남자는 생긴 것만큼 나쁘지 않았는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후로 거의 2년 가까이 남순은 컨테이너에서 명석과 살았다.


 이따금 명석은 저녁이 되어 남순이 잠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했다. 남순이, 고남순이. 아마 그의 무미건조한 성격탓에 제대로 표현은 되지 않았을 것 같았지만 예상컨대 명석은 남순을 나름 아껴서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로 남순의 이름 석 자를 불렀을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해."

 "뭐가."

 "그 때 경찰도 아니고 구급대원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아부지 전화번호였는지."

 "멍청해서 몰랐던 거 아니냐."


 멍청해서, 어쩌면 그냥 알았던 걸지도 모르지.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확실하게 안다고 하니까. 언제나 무뚝뚝하고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애매한 그가 희미하게 옅게 보내는 것이 제 자식에 대한 사랑임을 말이야.










그냥 그런 생각입니다. 남순이네 아부지는 사실 남순이를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일단은 제 자식이었고 뭣보다 생활비도 보내주고 있었고. 막말로 싫었다면 자식새끼 어떻게되든 알 게 뭐냐 라는 식으로 생활비 따위도 보내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적이긴 하지만 남순이 아부지가 남순이를 생각해주는 모습을 써보고 싶어서 이야기가 극단적이 되어버렸네요. 논커플링은 처음 써봅니다. 나름 좋네요. 뭐랄까 부자간의 무언가가 보고싶었던 모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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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남순]

카테고리 없음 / 2016. 1. 24. 13:02















살금 눈을 뜨자 제일 처음 보인 건 낯선 천장이었다. 채도가 낮은 조명과 무늬가 옅은 흰 벽지, 크림색 얇은 커튼, 벽면을 가득 채운 캔버스 속 제 자신. 거기까지 보고나니 이 곳이 사장님의 집이라는 걸 깨달은 직후였다. 느리게 몸을 일으키자 막 방문을 열고 들어온 그가 후다닥 몸을 받쳤다.  느리게 눈을 끔뻑이다 작게 들리는 소리에 아, 했다. 애옹거리는 소리.

"수. 수야."

도도도, 가벼운 소리와 동시에 침대 위로 까만 고양이가 털썩 몸을 올렸다. 갸르릉거리며 제 몸을 부빈 수는 옆자리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잠에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사장님, 그러니까 지혁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필시 제 발작이 또 일어난 이유와 잔소리를 하려는 셈이 분명했다. 별로 들을만한 잔소리는 아니었다. 죽네 사네 마네 하는 얘기 뿐이니까. 그런 걸 누가 듣고싶어 하겠냐만은.

"집에 고양이 혼자 두면 안절부절 못 할거 같아서."
"어차피 집에 갈 건데."
"못 가. 너 요즘 발작 더 잦아진 건 알지?"
".........."

몸통을 쓰다듬던 손길을 거뒀다.

"몰라요."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그는 사르륵 내려오는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입을 다물었다. 너 그러다 죽​을지도 몰라. 하는 말을 흘려넘기며 그에게 재촉하듯 눈길을 보냈다. 이제 곧 말일인데 얘기가 안 나올 리 없었다. 끝까지 대답해줄 마음이 없는 거 같아 침대에서 일어나 종종종 다가가니 그제야 묵직하게 한숨을 쉬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번 달엔 못 만날 거 같대. 힘들대."


입꼬리가 도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번 달에도 만나지 못 한다. 시선을 비켜 바닥을 내려다봤다. 맨질맨질하게 빛나는 바닥이 반쯤 가려졌다. 보송보송 엊그제 빤 러그가 부드럽다. 못 만나는 이유를 부득불 듣지 않아도 알만 했다. 예의 그 여자친구 때문이었을 거다. 자꾸 나를 만나는 게 어지간히도 꺼림직했던 모양이다. 머리는 이해하고 있으나 마음까지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묘한 기분 높낮이를 알아챈 듯 그는 다가와 한 팔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쿵, 쿵 뛰는 소리는 제법 안정을 가져다주고는 하는데 역시 이름으로만 의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어렴풋이 짐작정도는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위로를 받는지 말이다. 소리 하나도 내지 않고 고양이의 발소리 마냥 떨어지는 입술은 이마에서 콧잔등으로 콧잔등에서 콧망울로, 그리고 천천히 입술로 가까워졌다.

"남순아."


그래도 입술만큼은 안 되는 거였다. 제아무리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었다. 손바닥으로 가린 입술이 느리게 비뚤어지는 듯 싶더니 가만히 떨어져나갔다. 위로를 해주는 일렬의 행동중에서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뒷머리를 큰 손으로 헝크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좀 더 쉬라며 문을 닫고 나갔다. 수면치료라며 되도 않는 지식을 꺼내들며 부러 수면등을 키고 잔다. 사실은 그 연한 빛이라도 들지 않으면 불안해서 키고 자는 거였다. 옅은 파랑은 마치 바닷속에 잠식되어 있는 기분을 갖게 했다. 이 옅은 파랑에 몸을 맡겼던 것이 몇 번이던가. 이제는 셀 수 도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가만히 생각했다. 언제부터,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된 건지. 모든 것은 그 날부터라고 나는 기억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세 달 남겨둔 그 시간.
언제부터였나. 흥수의 옆자리에 없던 것이 생겼다. 여자친구였다. 고백이 들어와도 공부 때문에 일부러 거절하고 선도 그어놓고 다니던 흥수의 곁에 여자애들이 있기 시작했다. 치밀한 건지 뭔지 여자친구가 된 여자애들은 흥수가 공부하는 쉬는시간과 방과후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뒷문에서 얌전히 서있으면 변기덕이나 시끄러운 녀석들이 흥수에게 면회라도 오는 마냥 여자친구가 왔다며 떠들어대고 그 소리를 들은 흥수는 내쪽을 한 번 보고, 의자를 드르륵 소리가 나게 끌고는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라도 할라치면 금세 변기덕 패거리가 우르르 몰려들어 박흥수가 여자가 생긴 뒤로 변했네 마네 하는 소리를 이골이 나도록 들어야만 했다. 짧게 만나고 헤어지던 여자친구들에 작게나마 안도하던 내게 일말의 무언가가 부서진 건 졸업식 날이었다.
눈이 올 거라고 했던 거 같았다. 흐린 하늘에 덩달아 내려가는 텐션에 눈을 도르르 굴리다 이내 신발을 꿰어신고는 느릿느릿 대문을 열었다. '고남순.'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파득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눈앞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그저 휑한 골목길. 그것만이 쌩하니 있었다. 겨울이라, 날씨가 이래서, 댈 수 있는 핑계란 핑계는 다 대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만 이대로만 되서 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몸을 움츠리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잰걸음을 했다. 넘어지면 좋으련만. 차라리 털썩 넘어져서 다 내던지면 참 좋을 텐데. 낮은 숨을 뱉는다.
졸업식을 좋아했던 기억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엔 어머니가 없었고 무관심하고 술병이 난 아버지가 졸업식에 올 리가 없었기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고, 중학교는, 중퇴니까. 딱히 좋은 기억이 없었다.지독한 연설과 추위, 그리고 가족들, 내게 없는 것들이 부럽다거나 그런 걸 느낄 새는 없었다. 애초에 없던 거니까. 처음부터 내 손에 없던 거니까. 이리저리 얽히고 서로 끌어안고 꽃다발을 든 무수한 인파사이를 지나가다 발목을 잡혔다. 우뚝 멈춰선 채 눈을 떼지 못했다. 새로 사귀었다던 여자친구와 그런 여자친구에게 목도리를 건네주는 흥수네 누나, 그리고 그 사이에 주머니에 손을 꼽아넣은 채로 서 있는 박흥수. 그 세사람을 보고있는데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작게 웃던 박흥수가 고개를 들었고 허공에서 시선이 맞았다.

"........."

고개를 돌려버렸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대로만 되서 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미련하고 또 멍청해서 스스로 지쳐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 마음을 끝까지 쥐고 갈 거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흥수에게는 더더욱 얘기하지 못 할거고, 속에서 점점 썩어가듯 문드러지는 마음을 주체못해 결국엔 괴물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그 겨울 처럼 말이다. 그 겨울처럼 되지 않고 박흥수 옆에만이라도 있고 싶다면 얼른 차선책을 찾아야했다. 속에서 곪아버리는 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비워두고, 새로운 것을 채워넣을 때까지. 그러나 과연 그 새로운 것이 있기는 할까, 라는 생각에 실소했다.
그날 박흥수는 우리집에서 잤다.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고는 방에서 이불을 깔고 잤다. 낮에 시선이 맞았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없던 일이 되어버린 것 마냥, 흥수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도록 잠이 오지 않아 결국엔 몸을 웅크리고 흥수의 등을 본채로 눈을 감았다. 넓직한 등이 눈을 감아도 보이는 듯 해서 목이 꽉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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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프레오] 심연

/ 2016. 1. 23. 22:56





재프 렌프로X레오나르도 워치












헬사렘즈 롯트의 밤거리는 아침이나 낮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더럽다. 그러나 아침이건 밤이건 욕망에 충실하고 위험한 인생을 사는 재프 렌프로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기든 아니든 그는 제 욕망만 착실히 풀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평소처럼 주머니에 손을 우겨넣고 삐딱한 걸음으로 밤거리를 걷던 재프는 흰 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이계인이든 인간이든 하나씩 골라잡아 모텔로 데리고 들어가려는 여자들을 훑었다. 지독한 술냄새와 향수냄새에 그의 미간이 저절로 찌뿌려졌다.



물고있던 시가의 끝이 점점 타들어갔다. 재프는 고개를 들어 흐리멍텅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이윽고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섹스가 하고싶지 않은 밤이다. 아마도 그를 아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죽을 병에 걸린 거냐며 물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그는 아파 죽을 거 같아도 섹스는 하고싶을 거 같은데 말이지, 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를 등지고 걸어나갔다.






오는동안 중간에 비가 내렸다. 천둥이 요란하게 치며 하늘을 번쩍거리게 했던 탓에 재프는 팔자에 없던 뜀박질을 해야만 했다. 흐린 날은 있어도 비는 안오는 헬사렘즈이건만 드문 일이었다. 손으로 성의없이 물기를 털며 바라본 라이브라의 사무실은 불이 죄다 꺼져있었다. 늦은 저녁에 경첩이 울리는 소리가 으슥하게 나버리는 바람에 당황할만도 했지만 재프는 태연했다. 전면창으로 비가 창문을 타고 내려가며 바닥과 소파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소리가 나지 않게 가까이 걸어간 재프는 소파 위를 차지한채로 잠들어있는 레오를 주시했다.




'미셸라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미셸라를 위해 살겁니다.'




온몸과 눈가에 붕대를 감아놓고서도, 뼈가 부러지고 피를 토했던 주제에 건방진 녀석. 재프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대차게 레오를 까대었다. 건방졌다. 정말로. 재프는 레오의 그런 성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방지고 작고, 연약하고 신체능력도 거의 없는 라이브라의 짐덩이만도 못한, 그저 눈만 좋은 일반인이. 여동생을 위해서 제 목숨 하나 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녀석이 달가울 리 없었다. 조금 더 소중히 해주면 좋으련만. 물론 레오를 험하게 다루는 재프 자신이 할 말은 아니었으나 재프는 나름대로 그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레오에게는 충분히 불친절함이긴 했지만 말이다.




"등신 같은 게."




낮게 뇌까린 단어가 스스로에게 돌아간듯 했다. 재프는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손을 뻗었으나 그대로 멈춰야만 했다. 쿠르릉, 사무실이 번쩍 빛나고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얕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모로 누워있던 몸이 웅크러들었다. 재프는 레오가 울고있음을 짐작했다. 미, 셸, 라... 드문드문 나오는 단어들을 이어보면 그의 동생의 이름이었다. 질리도록 들리는 그 이름이 그에게 있어서 어느정도의 절망이고 죄책감일지 솔직히 재프 렌프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혹독한 인생관과, 특유의 감정부진 때문인지는 알수없지만 아마도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냐며 스티븐은 일침했다.




"미셸, 라...."




미안해. 유약한 목소리가 파르륵 떨리고 있었다. 몸을 뒤척인 레오가 천정을 향해 돌아누웠고 이윽고 눈을 떴다. 때마침 얼굴을 가까이 한 재프와 정면으로 얼굴을 맞닥뜨리자 비명을 내지르며 시야셔플을 당할거라고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외려 뺨으로 손이 닿아오더니 빛, 반짝거려, 미셸...라...? 흐릿하게 뜨여졌던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기이하게 빛났다. 마치 하늘의 그것처럼 시린 색의 눈동자가 이윽고 선명히, 동그랗게 떠지자 마자 키이잉, 하고 기묘한 소리와 동시에 재프의 시야가 어지럽게 돌아갔다. 우왁, 와아아악! 나 죽는다고! 토나와! 바닥에 자빠져 두 눈을 감싼 재프가 크게 외쳤고 그 외침이 닿고나서야 재프는 정상적인 시각으로 돌아왔다.




"이 빌어먹을 음모머리...눈알이 빠질 거 같아."

"그, 그러게 누가 그렇게 가까이 있으래요? 애초에 자다 깼는데 재프 씨 같은 사람이 눈앞에 떡하니..."
"있으면 감사한거지, 인마. 이 재프 렌프로 님 같이 잘생긴 얼굴을 깨자마자 본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미천한 너에게 몸소 깨닫게 해주지."




과장된 톤의 목소리에 결국 레오가 두손을 들었다. 뭐, 얼굴정도는 인정해 줄게요. ss선배. 언제 울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의 레오를 보고있자니 재프는 속이 답답해졌다. 언제부턴가 레오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마치 체한 것처럼 꾹 막힌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제 머리를 거칠게 헤집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 감정을 내려두고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을 시행했다. 자다 깨서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레오를 번쩍 들어 돌지난 갓난쟁이를 안듯 품에 안고 얇은 이불을 발끝으로 툭툭 치워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적에 레오가 의문을 가득 담고 묻는다.




"에, 에? 재프 씨 지금 우리 어디가는 거에요?"

"어디긴, 이몸의 집이시다. 미련한 음모머리여."
"그거 어디사는 왕 노릇인가요. 그만둬주세요."
"자꾸 말대답하네. 실눈 꼬맹이가. 울려버린다."




저질농담! 기겁을 하는 레오의 등을 토닥토닥, 투박한 손길로 두드린 재프는 그냥 울었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며 라이브라 사무실을 나섰다. 하늘은 비가 온 적도 없다는 것 마냥 개어있었다. 너의 그 절망이 어느정도인지 나는 상상할 수없지만, 다만 나는 너를 위로해줄 순 있겠지.












*

쓰레기 재프도 좋지만 레오에게만은 다른 재프도 참 좋져 'ㅁ')9 여러분 쟆레 냥냥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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