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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협정혁] 우울의

/ 2016. 1. 21. 23:58

주르륵, 미친 것 마냥 내린 비 때문에 며칠을 집에서 앓아야 했다. 몸은 건강체였는데 근래 들어서는 앓는 주기가 짧고 길다. 딱히 이렇다 할만한 친구관계도 없어 핸드폰은 잠잠했다. 가뜩이나 참 텐션 가라앉는데 해 마저도 없으니 도무지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스스로 조롱하는 짓도 지친다. 윤, 정, 혁. 맨바닥에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적어보며 소리 내 불렀다. 고요한 집안은 빗소리로 가득 차서, 외롭다.

 

 

“…….”

 

지겨워. 마른침을 삼키다 몸을 일으켰다. 살짝 달라붙는 트레이닝 바지는 남색이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창밖은 우중충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 셈일까. 한숨을 포르르 쉬다 몸을 바로 섰다. 지갑을 챙겨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그대로 흘러 지면으로 떨어졌다. 대학을 중간에 그만 둔지 오래였다. 지금은 백수일 뿐이다. 아직 창창한 스물일곱에 나는 백수다. 지갑 안에 든 지폐 몇 장으로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집고 알바생에게 담배 두 갑 달라고 한 뒤 계산을 대충 하고 나왔다. 지긋지긋하다. 약을 받으러 가야겠다. 최근 들어서는 정말 감정기복이 미쳤다고 해도 될 만큼 제멋대로였다. 갑자기 실없이 기분이 좋아질라 치다, 문득 저 반대편 나라까지 땅 뚫고 갈 정도로 텐션이 떨어지기도 했다.

 

 

“아…….”

 

 

나는 걷다 말고 멈췄다. 쏴아아아, 귓가에 잔잔하게 울리는 빗소리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지만 내 앞에 있는 것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멍멍, 짖어봐.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강아지, 아니 개다. 개는 까만 눈으로 나를 멀겋게 고개까지 치든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엉덩이를 들어 꼬리를 살랑대더니 이윽고 다가와 다리에 뺨을 부볐다. 복슬복슬한 털이 비에 젖어 축 늘어졌다. 나는 이 개의 종류를 알고 있었다. 그, 허스키…던가.

 

 

“안녕.”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개는 한 번 짖었다. 시선을 잠시 마주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차박차박, 슬리퍼를 신고나온 맨 발에 물이 튀었다. 뒤에서 종종대는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묵직한듯 가벼운듯. 동물 특유의 걸음걸이. 한참 후에야 나는 여까지 쫓아온 개를 바라봤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어 고정한 채로 말했다. ‘기다려.’ 알아들은 모양인지 앞에 얌전히 앉는다. 안에 들어가 수건을 가지고 나와, ‘얘, 들어와.’ 라고 하자 개는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와 현관에 앉았다. 물에 젖은 걸 대충 털어 말리자 끙끙대며 뺨에 제 주둥이를 가져온다.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뭐야?”

끄응-

“목욕하자, 들어와.”

 

 

영리한 개였다. 대답은 못할 지언정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 듯 했다. 푸스스 웃다가 입술을 굳혔다. 작게라도 웃었던 것이 아득했는데. 옆에서 타박타박 걷는 개에 웃었다. 내가, 윤정혁이, 사랑 때문에 우울증까지 제대로 앓은 윤정혁이. 이다지도 말갛게.

 

 

 

 

 

 

 

 

 

 

 

정혁은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꿈에서 헤맸다.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것들과 소리, 그리고 그녀. 지옥 같았으며, 또 사랑했으며, 또한 매우 아픈 상처였다.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드는 넘치는 감정은 정혁을 좀먹듯 파먹는다. 발작을 하듯 간헐적이게 숨을 들이쉬는데 무언가 묵직한 것이 몸 위로 올라타며 얼굴을 마구잡이로 핥아댔다. 화들짝 놀란 정혁이 눈을 떴다. 선홍색의 혀. 그리고 몽실몽실한 털뭉치….

 

 

“그만…….”

 

 

그만해도 돼. 동협아.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영리하게도 네 발로 내려간다. 동협, 그러니까 어제 주워온 개의 이름이었다. 뭘로 지을까, 하루종일 고민하다 문득 사람 냄새 나는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킨 정혁이 커튼으로 꼼꼼히 가려진 창문을 바라봤다. 어두컴컴한 침실은 빛이 없다. 낮은 한숨과 동시에 커튼이 젖혀지며 밝은 햇살이 스며왔다. 눈이 부셔 팔로 가린 채 으으, 하는 앓는 소릴 내자 침대 위가 꺼지며 개가 끙끙 대는 소리가 들렸다. 오두방정을 떨어대는 동협을 끌어안고 털이 복슬복슬한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픈 거 아니야…괜찮아.”

 

 

그제야 조용해진 동협은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혁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듯 했다. 그는 천천히 동협의 턱 아래를 간질였다. 기분이 좋은 듯 헥헥 대는 것은 여느 개들과 다름없는 개구진 표정이었다. 수많은 시간들 중 잔잔한 기분으로 시작한 날이 있었던가를 꼽던 정혁이 이내 슬쩍 웃었다. 스케줄 취소였다. 약은 당분간 필요 없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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