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수남순] 밤 소리
흥수남순동협일지도?
: 그리움에 사무치다.
따듯했던 온기는 어디로 가고 발끝이 서늘함에 눈을 떴다. 슬쩍 열린 문틈으로 바람이 조금씩 새어나오더라. 한숨이라도 푸욱, 내쉬며 방문을 닫으려는데 어렴풋하게 직감했다. 그 사람이 깼구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으로 숨죽여 문을 열었다. 항상 여기저기 두었던 라이터 하나가 안 보인다. 베란다 문이 열린 채로 은은한 달만이 여유롭게 빛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좁은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웅크리고 앉은 고남순이 눈에 들어왔다. 무의미한 행동마냥 줄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바로 앞에 둔 재떨이에 꽁초만 수북하더라. 저 때 건드리면 대답 하나도 안 하고 정말 너 따위 모르는 새끼야. 하는 것처럼 굴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섣불리 건들지는 않는다. 이제는 말이지. 같이 지낸지 고작 세 달인가?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있으니 한 대 피울래. 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난 안 피워요.”
형이 아니라서. 뒷말을 쓱, 집어삼켰다. 확실히 엄마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다른 게 많았더랬다. 거절 의사를 보이니 금세 수긍하고 다시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문다. 폐에 구멍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후, 하고 한숨을 내뱉듯 연기를 뿜더니 그만 피울 요량인지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그리고는 시선을 베란다 난간 너머로 건넸다. 새벽의 아파트는 조용했고, 또 서늘하다. 대충 방에 어질러진 옷가지 하나 주워서 차가운 몸에 걸치라고 내밀었다. 푸스스 웃는 얼굴이 참으로 예뻐서 입을 다물었다. 가끔씩 보이는 아름다운 웃음은 가슴이 눅눅하게 녹아내려. 그대로 잠이라도 들 것처럼 눈을 감은 고남순은 곧 드러난 모든 표정을 지워냈다. 새벽의 쌀쌀함만큼 색도 없고 감정도 사라진 얼굴에는 그리움만이 짙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그리움에 향기라는 것을 덧붙인다면 아마 지독한 냄새일 것이다. 달콤하지도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은, 독 같은 향기일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지었다.
“……가끔이겠지만, 왜 그러고 있는 거예요?”
“……….”
고남순은 대답이 없었다. 다만 지겨우리만치 보았던 아련한 눈을 하고 바깥을 볼 뿐이었다. 그 행동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도 수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해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기도 하여. 나는 절대로 그 눈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이러고 있으면, 올까봐.”
“……….”
“이러고 있으면, 혹시 오는 게 보일까봐.”
그만두질 못하겠네. 견디질 못하겠어. 체념을 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슬쩍 손을 뻗어 베란다 안으로 넣었다. 바닥 타일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잡힌 손을 조금 쓸어보다 꽉 잡았다.
“……한심해 보여도 그래. 올까봐 놓지도 못해. 아직도 못 믿겠는 걸.”
자조적으로 웃는 소리는 겨울의 눈처럼 고요하게 내려온다. 입꼬리에 걸려 사랑스럽게 웃는가 하면 사무치게 추워 얼어붙을 것 같은 감정을 준다. 너무 차가워서, 그 차가움은 마치 내게 철벽이라도 치는 거 같은 느낌을 준다. 나른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와 정 반대로 경기라도 일으킬 정도로 사람 손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다. 그는. 오로지 딱 한 사람만을 기억하며 그 손길만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이었다. 잔인하리만치 한 사람만을 보는.
“동협아.”
“…….”
“졸리다. 나 잘게.”
이미 죽은 박흥수를 영원히 놓지 못할 테지. 그의 미련함이 안타깝고, 그의 미련함이 속상하다. 잠깐이나마 잡았던 손에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었다.
“……병신.”
낮은 욕지거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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