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수남순] 감기몸살
짧 / 2015. 11. 19. 23:18
이게 얼마 만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워낙에 건강체도 건강체였는데 축구도 같이 하고 뭐, 나름 몸도 좋다고 자부 했었던 터라 아프긴 개뿔 아픈 척이라도 해보려고 선생님 보건실 갔다 오고 싶습니다. 하면 나 튼튼한 거 하나는 아마 세상 사람이 다 알거라며 까불지 말라고 꼬리를 잘라먹기 일쑤였으니까. 근데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려나, 아니면 해가 서쪽에서 뜨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건지 저녁부터 살그머니 열이 오르는 것 같더니 결국엔 아침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어지럽고 메슥거리고 눈이 뜨거웠다. 누나가 이마에 손을 얹어보더니 오늘은 학교 절대 못 갈 것 같다고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속상한 얼굴을 했다. 괜히 누나한테 미안하고 그래서 신경 쓰지 말고 일 다녀오라고 했다. 걱정 많은 누나니까. 잠들기 전에 얼핏 누나가 담임에게 전화하는 게 들렸다.
아이고, 두야. 그래 이제 운동도 안 하는 몸인데 찌뿌듯하기만 하고 무거워서 다시 누워버렸다. 조금 깊게 잠들어서 그런가, 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골아 떨어졌다. 들뜬 숨을 푸르르, 내 쉬다가 헛웃음을 픽픽, 흘렸다. 집에 아무도 없는걸 아는 상태에서 아프니까 가슴이 허했다. 아픈데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게 뭔가 내심 서럽고 또 속상해서 눈을 꾸욱, 감았다. 진짜 조금, 아니 많이 서러울지도 모르겠다. 고남순 너도 그랬냐. 벨도 없는 녀석이라고 느껴지긴 하는데 원체 외롭고 쓸쓸한 녀석이 그 아팠을 적에 홀로 누워서 있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쓰라렸다. 아파서 감성적이 된 걸까. 근데, 뭔가, 아까랑 다른 거 같아. 아.
“……고남순?”
“…….”
새액, 엷게 웃은 고남순은 천천히 손을 들어 이마를 어루만지다 가슴위로 얹어 다독이듯 쓸었다. 그게 참, 뭔가 웃기긴 해도 옛날에 나 어릴 때 크게 감기를 앓아서 아팠을 때 엄마가 해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심되고 막, …그냥 따듯했다. 입술 사이로 안 흐르게 뭐 받쳐주고 시럽을 넣어주는 것도 상냥해서 마치 빨리 나아야지, 착하다. 하는 것 같은 느낌? 얼마나 편하던지 안 올 것 같던 잠도 풀풀 와서 눈꺼풀이 무거웠다. 겨드랑이에 끼워둔 체온계를 꺼내더니 입술을 곱게 다물면서 눈웃음을 살살 진다.
“아까보다는 내린 거 같네.”
더 자면 될 거 같아. 잘 자, 흥수야. 몽롱한 정신에도 용케, 들은 거 같다.
**
진짜 열은 내렸네. 가는 목소리에 눈이 가볍게 떠졌다. 누나? 갸웃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그나마 아침보다는 훨씬 나아서 누군가 돌봐준 건가 싶다. 그러다가 진짜 꿈결에 본 듯한 고남순이 떠올라 나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사이가 어색하고 조금 그래서 나도 묻기 애매하긴 한데 안 묻기도 좀 뭐한 상황이잖아?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며 소리를 내는데 쩍쩍 갈라진 게 내가 들어도 못 들어주겠더라.
“집에, 혹시…누구 왔었어?”
“몰라. 죽이나 먹어.”
퉁명스럽게 흥, 하는 누나를 보다 헛헛하게 웃으면서 거실로 나가 앉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을 호호 불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제법 고소하게 올라오는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역시 누나네, 하고 한 입 먹는데 응?
“…누나, 이거 누나가 한 거, 맞아?”
“……그러게. 내가 안 한 거 같네.”
“어엉?”
그냥 먹어. 나중에 물어 보든가. 피식 웃은 누나가 정말 내가 안 한 것 같잖아. 하며 옅게 웃는다. 이거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나타난 느낌인데 내 착각은 아닐 거다. 뭐지. 그럼 진짜 고남순이라도 온 건가. 그러고 보니 얘는 내가 아파서 학교 안 갔는데도 연락 하나를 안 해주냐. 좀 섭섭하다? 핸드폰을 켜 카톡을 확인하는데도 온 거라고는 -흥수야 자?, 하나밖에 없다. 인간관계가 그렇게 안 좋지는 않았다만, 요즘은 조금 협소한긴 하지. 여태 못 친해지고 어설프게 겉도는 것도 같고. 누나 알면 좀 속상하겠지. 냠냠 떠먹다가도 중간 중간 부유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걷잡을 수가 없어 자꾸만 딴 생각을 하며 먹게 됐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무튼 내일 가서 얘기나 해줘야지.
“근데, 누나.”
“으응?”
“설거지…안 한 거야?”
“……푸흡.”
뭐가 웃긴지 누나는 그 날 잠들기 직전까지 실성한 사람 마냥 웃었고 나는 여전히 이해 못한 채로 잠들었다지.
다 나았네. 아픈 것도 새삼스럽고 하루 종일 누워있던 것도 새삼스러워서 좀이 쑤셨다. 바닥을 툭툭, 신발코로 두어 번 차고 현관을 나서는데 앞에 뭔가 발에 채였다. 억, 하는 단말마와 같은 소리에 파득, 고개를 내리자 고남순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가재미눈을 하고는 올려본다.
“뭐 인마. 짜식아, 넌……,”
옆구리를 꼭 감싸 쥔 손가락에 덕지덕지 붙은 데일밴드에 멍을 때렸다. 고남순이‘손등’같은 데도 아니고‘손가락’이 다칠 이유가 뭐가 있지?? 뭐 어디 요리라도 하고 온 애처럼…….
응? 요리??
“……흥수야?”
맹하게 되묻는 녀석의 머리를 잔뜩 헝클어 헤집고는 가자며 어깨에 팔을 둘러 일으켰다. 자꾸만 웃음이 샐샐 나온다. 진짜로 온 거다. 고남순이. 누나랑 얘기해서 우리 집 와서 나 열 내리게 간호하고 죽도 끓여놓고 간 거다. 그제야 앞뒤 이야기 아귀가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죽이 누나가 하던 거랑 다른 맛이 났고, 설거지를 하다 만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내가 꿈결 같은 느낌으로 널 본 거겠지. 너무 기특하고 귀여워서, 대견해서 그대로 뺨에다 대고 입술을 꾹꾹 도장 찍듯 누른다.
“아, 뭐야. 하지마아.”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형님이 그렇게 보고 싶었냐. 아침 댓바람부터 그러고 앉아있게?”
뿌듯해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웃지 마, 븅신아. 못생겼어, 공룡 같은 게.”
“또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얼렁 잘생긴 형 얼른 가요, 해봐.”
“꺼져, 븅신아아!”
귀까지 발그레 하게 달아올라 도망가는 걸 괜히 잡겠다고 우다다 뛰었다. 흐린 아침 하늘이 퍽, 예뻤다. 고남순 잡히면 죽어! 골목길에 쟁쟁히 울리는 것이 그리운 그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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