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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수남순] 조각

/ 2015. 11. 19. 23:16

: 상처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침묵같은 조용함에 살살 질문을 던지자 고남순이 고개를 슬쩍 돌려 나를 본다. 방금까지 만화책 잘 보다가 진지해서 그런가 고남순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쭉 뻗은 다리를 움찔, 작게 움직이다 심호흡을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너, ...자해 같은 거는 안 했지?"

".....밥 잘못 먹었냐."

 

 

개소리.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며 고남순은 시선을 다시 만화책으로 돌렸다.

 

 

 

 

 

 

 

어제는 살짝 계속 멍을 때리더니 오늘은 멀쩡했다. 대신 내 다리가 좀 안 멀쩡했다. 비가 오려는지 아침부터 쿡쿡, 쑤시고 욱신댔는데 기어기 하늘이 흐려졌다. 우산 들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좀 올려다 보더니 고남순 눈이 도르르 굴러, 내 다리로 안착했다. 앙 다문 입술이 하얗게 질리는 듯 해서 머리나 쓰담쓰담 쓰담았다. 마치 고양이가 만져주면 기분이 좋아 눈을 감듯 길게 그려져 눈꼬리가 조금 올라간 게 눈길이 갔다. 눈물점을 살살 어루만지니 언제 기분이 저조했냐는 것 마냥 귀가 빨갛게 열이 오른다.

 

 

"좋냐."

"좋다고는 안 했다."

"귀 빨개, 임마. 어디서 구라야."

 

 

입술을 비죽, 내민 고남순이 제법 귀여워 입술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불확실한 발음이 웅얼웅얼 쏟아져 나오길래 무시하고 교무실 갔다. 아까 학교 끝나면 오라고 정 쌤이 불렀거든. 너 먼저 집 가있던가. 곱슬한 머리카락을 털어내듯 손으로 헤집고는 뒷문을 빠져나갔다. 어롱거리는 고남순 얼굴에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이 새었다. 아마도 중증인가 보다.

 

 

 

 

 

교무실에는 의외로 누나가 있었다. 정 쌤과 긴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해 멍청하게 서 있으니 흥수 왔니. 하는 정 쌤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누나도 나를 보며 왔느냐고 이리 앉으라며 손짓했다. 분위기만 봐도 안다. 고3이니까 내 대학 얘기 하려고 부른 거다. 아니, 온 거다. 대학이 안 되면 어디 취업이라도 할 수 있느냐고 내 진로에 대해 말하려고 누나가 온 거다. 내가 작년인가 제작년 까지만 해도 정말 개망나니 소리 들을 정도로 답없는 녀석이었으니까 누나가 나 걱정 많이 하는 건 알겠는데 나는 도무지 대학을 갈만한 성적은 못 되는데. 그런 거 보며 고남순이랑 비슷하다. 6등급 같은 7등급 소리에 대학 갈 수 있냐고 묻는.

 

 

 

전문대 부터 직업학교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장장 1시간을 넘게 들으니 귀가 멍멍했다. 쟁쟁대는 대학, 대학 취업, 취업 하는 소리가 노이로제 마냥 따라붙는다. 매형 만나러 간다고 우산을 쥐어주며 먼저 빠져나간게 다행인 거 같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결국엔 쏟아붓는구나.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수술한 다리께가 욱신거린다. 꾸욱, 마사지 하듯이 누르고 있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나 기다릴까. 살짝 기대감이 들었다. 어둑해진 하늘 때문에 교내가 컴컴하다.

 

 

 

 

 

역시나 교실에 혼자 팔을 괴고 엎드린 고남순이 보였다. 근데 저 멍청이는 시계 때문에 얼굴이 배겨 불편할 텐데도 손목시계를 찬 채로 엎드려 자고 있다. 저거 얼마나 거슬리는데. 진짜 상 멍청이가 따로 없네. 조심조심 손목을 넓게 감은 시계를 풀러내다 시계 떨어트릴 뻔 했다. 1분단 위에 있는 거만 꺼져 있어서 조금 덜 선명했지만 보였다. 가로로 그어져 있는 걸.

 

 

"....뭐, ....하는!"

 

 

얼핏 손에 힘이 들어간 모양인지 고남순 파드득 놀라 일어나더니 자기 손목 시계 내 손에 있는 거 보고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뒤로 감추며 뭐냐, 하고 묻는 목소리가 잔뜩 떨렸다. 내가 잘못본 게 아닌게 됐다. 마른 침을 삼키며 하, 하고 숨을 뱉자 어깨가 흠칫 떨린다. 시끄러운 빗소리가 신경을 날카로이 만들듯 점점 주먹을 꽉 쥐었다. 까딱 하다가 쟤 칠까봐.

 

 

".....그거 뭔데."

"뭐가."

"....뭐 하고 산 건데. 너."

"........"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수그린 것이 참 몸으로 나 손목 그었어. 라고 보여주는 것 같아서 착잡해졌다. 성큼 다가가자 뒤로 물러나는 꼴이 짜증나서 손목을 그러쥐었다. 화드득 놀라 눈을 꾹 감는 게 꼴도 보기 싫었다. 근데, 그게 '그' 3년 새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좆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남순, 애원하듯 부르니 입술만 감쳐물며 아무것도, 아니야, 흥수야. 하고 같잖은 변명을 한다. 이렇게 증거가 선명하게 남겨져 있는데도. 우르릉, 하늘이 번개라도 칠 요량으로 시끄럽게 군다.

 

 

 

 

정말 씨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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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gg노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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